땅에서 멀어지는 현대인들의 건강 함수
영화 ‘올드 보이’에서는 묘한 음악이 깔려 나오며 우진(유지태 분)이 전면 벽이 유리로 구성된 펜트하우스에서 요가를 한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재벌 아들 한결(공유 분)은 남산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꼭대기 층에서 아침마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는다. 이처럼 전망이 좋고 높은 층수는 어느새 현대 사회에서 부의 상징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대기 오염과 황사가 심한 ‘아래 세상’을 떠나 맑은 공기를 쐴 수 있는 ‘위 세상’이 더 좋다고들 이야기 한다. 더 이상 땅을 밟지 않고 사는 사람들,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한의학에서는 천지인의 기(氣)의 조화가 자연과 더불어 건강을 유지하는 핵심이라고 하였다. 하늘로부터 운행하는 기운을 받고 땅으로부터 숙성된 기운을 받아 인간이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스팔트에 발을 디디고 빌딩으로 하늘이 가려진 도시에서 사는 현대인들의 삶은 이런 자연과의 조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자연의 면역력을 잃어가는 현대인
최근 아파트는 그 층수가 상상을 초월한다. 어렸을 적에는 12층 아파트만 보아도 우와, 탄성을 지르며 놀라워했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20층, 30층은 기본이며 49층, 66층 등 이제 땅에서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몇 층인가 세기가 무서운, 셀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높을수록 가격이 올라가는 아파트 시세와 달리,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5층 이하 저층아파트 거주자 보다 병원에 가는 횟수가 2배나 많다고 밝혀졌다. 특히 감기나 비염, 기관지염 같은 호흡기 질환이나 소화기 질환 같은 면역 저하로 인하여 발생하는 질환들이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일본 도카이대 의학부 오사카 후미오 교수는 초고층 아파트에 사는 임산부의 유산, 사산 등의 ‘이상 분만’이 저층 임산부보다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했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1~2층에 사는 임산부의 유산율이 8.9% 인데 반해 10층 이상에서는 19.4%로 무려 2배 이상 높았다.
음기가 부족한 현대인
지기(地氣), 땅의 기운은 한의학적으로 음의 기운이 가득하다고 본다. 현대인들은 여러 가지 음식 문화나 생활 습관 상, 기가 들뜨기가 쉽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터, 자극적인 음식과 이로 인해 발생되는 체열 등으로 기가 들뜨게 되는데, 이럴 때 체내에서 음기가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으면 기를 잡아주고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집에서건 직장에서건 공중 부양을 하고 있는 현대인들은 음기를 키울 새가 없다.
임산부의 유산율이 고층에서 더 높은 것을 미루어 보면, 땅에서 멀어지면 여성에게 더 좋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의학의 고전, 황제내경에는 여자 나이 14세가 되면 하늘의 기운을 받아 월경이 시작하며, 자식을 낳을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우리 몸은 나도 모르게 자연의 이치를 따라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여성은 한의학에서 음양 중 ‘음’으로서 지기(地氣)가 풍부할수록 더욱 그 생식력이 왕성해진다고 하였다. 그런데 점점 땅에서 멀어지고 있으니, 자궁의 기능이 약해져 임신 능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높은 곳에 사는 것은 다만 이런 기본적인 문제 이외에도 다양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주거지 가운데 최상위 3개 층은 저층부보다 햇빛을 많이 받아 건물 자체적인 화학작용에 인한 오염도가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특히나 건축물에서 발생하는 유기화학물질인 톨루엔 같은 경우 장기간 과다 노출될 경우 생식기능 저하는 물론 수정능력 장애까지 유발할 수 있다.
다시 흙을 그리워하는 현대인
무분별한 아파트 건축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흙냄새를 잊어가고 땅에 발을 붙이고 있었던 때를 망각해간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역으로 흙길을 찾아가는 웰빙 열풍이 불고 있다. 요즘 뜨고 있는 각종 ‘길’은 그런 열풍으로 인해 또 다른 몸살을 앓고 있다. KBS 인기 프로그램인 ‘1박 2일’에서 지리산 둘레길을 소개한 이후, 지리산 둘레길 홈페이지는 한때 접속 폭주로 다운되었다고 한다. 어디서 걸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떼거지로 몰리는 것이다. 걸을 줄 모르기 때문에 길을 만들어서 이렇게 걸으세요, 해야 걸을 수 있게 된 이상한 21세기. 어떻게 땅과 친해지는 것이 좋을까?
걷기 여행을 날 잡아 2-3일 한다고 해서 소진된 음기를 모두 충전하기란 어렵다. 또한 평소에 잘 걷지 않다가 갑자기 몰아쳐서 종일 걷는 이런 걷기 여행은 오히려 몸의 근육에 무리를 주어 발목에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 평소에 몸을 자연에 적응시킬 필요가 있다.
일단 흙길과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먼저 집에서 가까운 흙길을 찾아보자. 도시에 산다면 흙길 자체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최근 생태 공원 조성 등을 통하여 서울에도 서울 숲과 같은 장소가 생겼다. 도시의 강이나 하천 주위에 조성해 놓은 운동 코스도 자연의 바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하다.
평소에 흙과 마주할 기회가 없다면 1주일에 1번 정도 동호회 회원들이나 지인들과 함께 교외의 산이나 공원을 찾는 것이 좋다. 굳이 걷지 않더라도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땅과 교감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인체는 절로 긴장이 풀리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부러 걸으면서까지 땅과 가까울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현대인은 어쩌면 문명이 발달하면서 점점 불행해지고 있는 것 같다. 맑은 바람, 따스하게 품어주는 대지의 기운, 새카만 하늘에 수없이 수놓아진 별들까지 모두 잃어버린 채, 없어진 후에야 억지로 찾지 위해 또다시 노력을 한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건강을 위해서는 땅과 가까운 곳에서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자연과 비슷한 형태로 살아가도록 하루하루 조금씩 노력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