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체된 맥을 풀어주는 불임 치료
비가 계속해서 내리던 여름의 어느 날, 날씨만큼 침울해 보이는 그녀가 나의 진료실을 찾았다. 33세의 주부였던 김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5년 전 결혼을 하자마자 첫째 아이를 낳은 후, 심한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하였다. 남편과 시댁과의 불화 속에서도 자라나는 첫째 딸을 보면서 조금씩 병을 이겨냈고, 2-3년 전부터는 둘째를 가지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아 너무 속상하다고 하였다.
처음부터 잘 되지 않았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첫째까지 낳았는데 둘째가 잘 안생기다니 이런 경우도 있냐며 오히려 나에게 성토를 하는 것이었다. 이삼십년 전만 하더라도 아이를 네다섯씩 낳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최근에 둘째 불임이 많아진 것이 통계학적으로 사실이다. 도시 환경적인 면과 스트레스, 그리고 산모의 노화, 잘못된 산후 조리, 과도한 직장 업무 등이 더불어 첫째를 순산하고도 둘째가 잘 생기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김씨의 맥을 짚어보니 맥이 본디 좀 약한 편이었고, 여러 가지 걱정 때문인지 무언가 꽉 막힌 듯 울체된 맥이 느껴졌다.
"보통 맥이 부드럽고 혈액 순환이 잘 되어야 아이가 잘 생기는데 걱정과 일이 많으신지 답답한 느낌입니다. 약을 드시면서 울체된 경맥을 풀어주는 동시에 남편 분과도 대화를 잘 풀어나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울체되고 순환이 잘 되지 않는 김씨의 자궁을 위해서 임신을 돕는 한방 좌약인 보궁단과 전반적인 몸 상태의 개선을 돕는 한약을 함께 처방하였다. 한 달을 투약하고 나서 다음 진료 때에는 꼭 남편을 동행하겠노라고 약속을 받아 놓았다.
그렇게 처방을 하고 나서 한 달 후, 김씨는 남편과 함께 다시 나의 진료실을 찾았다. 최근 날씨가 이상한 지라 여전히 그 날도 비가 내리고 있던 오후였다. 김씨의 우울했던 얼굴은 약간 밝아진 듯하였고, 남편이 동행했다는 것 자체에 만족을 하는 것 같았다. 남편과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서로의 오해가 있던 부분이 많이 있었고, 약을 먹으면서 아내의 몸 상태가 좋아지니 서로 짜증내는 일도 줄어들어 오히려 부부 사이가 좋아졌다고 하였다.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이번에는 남편도 함께 임신에 도움이 되는 탕약을 처방받아갔다. 부인의 병뿐만이 아니라 부부의 정신 건강에도 일조한 것 같아 날씨와 다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오후였다.
박성우 원장 / 경희보궁 한의원